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더 해밀턴 (문단 편집) == 평가 == [include(틀:미국 보수주의 관련 문서)] >'''분명한 것은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역사상 대통령에 오르지 않은 정치적 인물들 중 가장 중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심지어 수많은 역대 대통령들보다 더욱 크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해밀턴은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여러 역할을 해냈다. 그는 사상가임과 동시에 행동가였고, 재기 넘치는 이론가임과 동시에 수완 좋은 집행자였다. (중략) 제퍼슨이 미국 정치 담론의 정수가 될 만한 시를 썼다면, 해밀턴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경영에 대한 산문을 쓴 인물이다. 다른 그 어떤 건국의 아버지들도 장래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국력에 대해 그토록 명확하고 선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으며, 국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토록 기발한 메커니즘 역시 제시하지 못했다.''' >---- >전기《알렉산더 해밀턴》서문 중 우선 정치사적으로 해밀턴은 그가 기고한 에세이들이나 문서들이 당대 건국의 아버지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주요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현대 헌법 해석 이론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가 구상했던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이론은 차후 미 행정부 체계를 만들 때 반영이 되었다. 특히 미국이 주들의 연합체가 아닌 연방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은 해밀턴 본인이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이를 지지하는 이들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해밀턴을 인격적으로는 싫어했어도 연방주의안을 지지한 인사들이 있었던 것과 해밀턴의 선언만으로도 연방주의자들이 버가 아닌 제퍼슨을 대통령으로 지지한 점 등을 보면 그가 정치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상당한 능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 연방주의자(Federalist)들의 별칭이 해밀턴의 이름을 딴 '''해밀터니안'''(Hamiltonian. 해밀턴주의자)이란 것에서도 이를 옅볼 수 있다. 한편 기존 그의 평가는 정치사적인 측면에 많이 집중되어 있지만, 사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서 미국에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라는 점이 있다. 그의 경제사적 업적은 비교적 근래에 재조명되고 있는데, 해밀턴은 독립전쟁 이후 남은 채무를 여러 정파들과의 협상 속에서, 남부의 입김이 닿는 [[워싱턴 DC]]를 수도로 하는 대신 중앙은행의 설립과 중앙정부가 진 빚을 각 주가 균등하게 갚게 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상주의 정책을 펼쳐 미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조치는 반연방주의자들에게 소수 부자들과 공업 기반의 북부에게만 유리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고, 채무를 탕감하는 과정에서 세수 확보를 위해 연방정부가 [[위스키]]에 세금을 매기자 분노한 농민들의 반발로 위스키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해밀턴은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사족으로 이런 중상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해밀턴은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한 [[미 해군]] 창설을 지지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알렉산더 해밀턴은 익히 알려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같은 미국 대통령들이나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거물들에 비하면 인지도는 떨어지고 미국사를 배울 때도 빨리 넘어가는 감이 있지만, 그가 생전 이룬 업적은 오늘날 연방 공화국인 미합중국[* 합중국: 합성 국가의 하나. 두 개 이상의 나라 또는 주(州)가 같은 주권하에 결합하여 단일한 외교권을 행사하는 나라. (정의 출처: Oxford Languages)]을 일궈내는데 기반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